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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토스 학파가 과학사에서 중요한 이유와 플라톤의 자연철학

밀레토스 학파의 과학사에서 중요한 이유, 플라톤의 자연 철학

 

 

밀레토스 학파가 과학사에서 중요한 이유

밀레토스의 탈레스를 비롯하여 소크라테스 이전에 활동했던 그리 자연철학자들이 과학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신화적 자연관에서 탈피하여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밀레토스 학파는 신화적 자연관 시대의 사람들과는 달리 물질의 본성과 변화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구체적인 사물로부터 일반적인 성징들을 추출해 내었다. 또한 엠페도클레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초기 자연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감각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임으로써 그리스 자연 철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와 같은 새로운 지적 탐구, 즉 자연철학이 출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먼저 그리스의 지리적 상황을 살펴보면, 그리스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근에 위치했고 중앙 집권 국가가 아닌 분산된 도시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지역적인 한계로 인해 식량 자급이 어려워 해상 무역 활동에 크게 의지했다. 이에 따라서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가 서로 교차하며 교류했고, 새로운 유형의 지식이 창출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또한 기원전 6세기경까지 그리스는 왕정, 귀족적, 민주정 등 다양한 정치 제도에 대해 고민했고, 자신들의 사회에 바람직한 정치적 구조를 물색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토론을 진행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기초 수준의 철학 공동체를 만들고 활발한 대화와 토론의 전통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2세기경 페니키아 인에 의해 발명된 알파벳이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로 유입되어 그리스 문화 융성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스어의 산문형 문장은 그리스 자연철학 다들이 추상적 개념을 창안하는 데 용이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플라톤의 자연철학

 

아테네의 유력 가문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스무살 때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고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죽자, 그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등을 여행했다. 그리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학원이 아카데미아(Academia)를 설립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에서 윤리학, 신학, 정치학과 함께 자연철학을 가르쳤는데, 그의 아카데미아는 자연철학을 교육한 최초의 학교로서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의 전통이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idea) 이론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상은 형상 또는 관념의 영역인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의 물질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이데아의 세계는 완전한 관념의 세계이며 물질세계는 이데아에 대한 불완전한 복제로 구성된 영역이다. 이데아의 세계는 형체가 없으며 비물질적이어서 만질 수도 없고 감각에 의해 느낄 수도 없는 영역으로 이성의 세계다. 또한 영원히 존재하고 절대적으로 불변하기 때문에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에만 진정한 실재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반면 물질세계는 가시적 세계이고 감각 경험의 세계이며 변화의 영역에 속하는 세계이다. 감각할 수 있는 유형의 사물은 이데아의 복제물로서 불완전하고 일시적일 뿐이다. 이처럼 이데아를 중시하는 플라톤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이론적, 형이상학적이며, 추상과 이성을 중시한다. 플라톤의 자연철학 역시 수학과 이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플라톤의 자연철학이 잘 드러나는 저서는 그가 만년에 쓴 '티마이오스'이다.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천문학, 우주론, 빛과 색, 원소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었다. 그중 플라톤의 우주론을 보면 세상의 중심에는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있고, 다른 천체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세상을 만든 조물주 데미우르고스는 태초의 무질서한 상태에서 지적인 설계에 의해 조화와 질서를 갖춘 세계를 계획적으로 만들어 냈다. 다시 말해 형상 없이 질료로만 채워져 있었던 혼돈으 ㅣ상태에서 아름답고 선하고 지적으로 만족스러운 조화로운 우주를 만들어 냈다.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무에서 세상을 창조해 낸 것인 데 반해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는 있던 재료로부터 세상을 만들어낸 조물주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창조신화와 부분적으로 합쳐질 가능성이 있어서 중세에 기독교에서는 플라톤의 우주론을 차용하기도 했다.